백운사

梅 松 | 2014.04.18 07:31 | 조회 5155


백운사는 1321년(고려충숙왕8)창건 되었다, 소속은 대한불교법화종이며 창건당시에는 대흥사라하였으며

조선 영조(1724-1776)때승려들이 힘자랑하다가 승려가 죽는바람에 페사도었다가 1903년경 하장우라는

분이 초막을 짓고 백운사라고 하였으며


1933년 봉국사 승려 송운재가 법당자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후 1956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1960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중창하여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인(약사전),산신각,용왕궁,종각,기타 건물1동이 있으며 한방병원을 건축하다가

 부도나서 흉물스러운 콘크리트건물이 방치되어 있다

백운사는 백마산에 위치해 있으며 백마산의 원래이름은 지봉산 또는 소마산이라고 불리어 왔다.

 백마산 의 해발은 465m로 괴신군 사리면 소매리와 음성군 원남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백마산을 경계로

남쪽으로는 백운사, 북쪽으로는 주봉사가 있다
백마산에 올라서 사방을 살펴보면  근방 작은 산들이 백마산을 보고 엎드려 절하는 형상이다

과거에 가뭄이 심할때 백마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하였다

 

백마산의 원래이름은 소마산(笑馬山)이라고 불리어 왔다. 조선인조(1623- 1649)때 백마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지금의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보천리, 덕정리 마을들을 돌아 다니면서 논밭의 곡식을 마구

뜯어먹고 있었다. 그곳 마을 사람들은 수일간 말과 실강이를 하다가 끝내는 덕정리 뒷산에서 붙잡았다

잡고보니 백마가 어찌나 사나운지 당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덕정리 꽃절의 석굴속에 가두고 굴 앞을 막아 놓았다.



백마는 배가 고프다 못해 있는 힘을 다하여 높는 돌담을 박차고 석굴 밖으로 뛰어나와 소마산으로 갔다

이후부터 백마는 소마산에 숨어살다가 노쇠하여 소마산 남쪽 지금의 괴산군 사리면 노송리 어둔골

뒤산에서 죽었다고 한다.

소매리 사람들이 모여서 묻어주었다고 한다.







그뒤 날이 가물면 이 말무덤에 맑은 물 한말을 길어다가 붓고 농악을 치고 말무덤을 파는 시늉을 하고

 제사를 지내면 비가온다고 한다

소마산에서 살다 죽은 백마 때문에 이산을 백마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백운사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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